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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DIY] 자작 딥펜 개조기 / Handmade Dip Pen Remodeling


만년필 커뮤니티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잉크의 발색을 보여주며 찍은 사진들에는 대부분 딥펜으로 적은 글들이 등장하는데 넉넉하게 적셔준 잉크가 독특한 테두리 색상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나 역시 그런 테두리 색상을 보고 싶은데 내겐 딥펜이 없다. ㅡ.ㅡ

그래서 만들어 봤다.


Ver. 1

준비물은 집에 굴러다니는 못쓰게 돼버린 모나미 153볼펜과 영웅 616을 구입하고 받은 여분의 닙, 역시 어딘가 처박혀있던 수축 튜브 쪼가리 그리고 나의 노동력.


개조 단계는 무척 간단하다. 못쓰는 153을 분해해서 볼펜 심에 616의 닙을 꼽아준다. 
다행히도 616의 여분 닙의 직경이 작은 편이라 볼펜 심에 얇은 수축 튜브를 한번 감싸주니 딱 맞게 들어간다.


그리고 닙의 길이가 볼펜 심보다 길기에 볼펜의 앞 꼭지를 약간 잘라준다. 
닙의 직경이 작아서 머금을 수 있는 잉크의 양이 너무 작다 보니 볼펜 스프링을 약간 잘라내어 닙 하단에 구겨 넣었다.
이러서 살짝 피드의 역할을 하면서 잉크를 좀 더 많이 머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는데 닙을 완전히 수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볼펜 심의 뒤 꽁지를 좀 잘라내었지만 여전히 후디드닙 펜처럼 살짝 나와있다.


물론 완전히 수납되게 할 수 있긴 한데 그렇게 한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사용할 때 닙의 길이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서 딥핑할 때 본체까지 잉크에 담기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래서 일단 버전 1은 여기서 마치고 후일을 기약하며 팽개쳐 두었다.


Ver. 2

1차 버전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도전한 2차 버전.
준비물은 언젠가 구입했다 닙을 망가뜨려 방치해두었던 사파리 짝퉁 중국산 펜과, 영생 659에 딸려온 여분의 F 닙 파트. 그리고 역시나 수축 튜브와 노동력.

천오백 원에 무료배송으로 구입한 사파리 짝퉁 중국 펜에 홀더의 임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충분히 가성비는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먼저 사파리 짝퉁의 닙파트는 혹시나 사파리 정품에 문제가 생기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따로 보관하고 영생 659의 여분 닙파트에서  사용 안 하는 피더를 과감히 잘라내서 사파리짭에 이식하기로 했다.
피더를 자른 이유는 여러 가지 잉크를 시필 해보는 용도로 사용할 딥펜을 제작하는데 피더에 잉크가 스며들면 세척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피더를 자르고 사파리 짭에 넣어보니 직경이 안 맞아서 역시 여기도 수축 튜브를 한번 둘러줬다.


그리고 역시 잉크를 좀 더 머금으라고 어느 블로그에서 봤던 방식대로 수축 튜브를 이용해서 보강했다.
수축 튜브를 살짝 가열하고 볼펜으로 눌러서 안쪽으로 말리게 했다.


후에 잘라내버린 피드 조각을 방바닥에서 발견하고 수축 튜브사이에 넣어봤는데 그런대로 사용할 만했다.
단점은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고 장점은 사파리짭의 캡을 닫을 수 있어 휴대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만족했는데 딥펜에 일반 펜촉을 쓴다는 점이 내심 찝찝했다.
물론 연성 닙만 딥펜에 쓰라는 법은 없고 실제로도 딥펜용 경성 닙도 많이 판매하고 있으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딥펜 == 연성닙 이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있어서 나중에 3버전을 제작하는 시초가 되었다.


Ver. 3

주말에 기대 없이 들어가 본 동네 문구점에서 니코 스푼 닙과 제브라 G 닙을 구매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진정한 딥펜을 만들 수 있게 되어서 세 번째 버전에 도전해 보았다.
 
준비물은 두 번째 버전에서 사용한 사파리 짝퉁과 부품용으로 보관하겠다던 사파리 짭의 피더, 사포, 새로 구입한 G 닙, 스푼 닙, 스프링, 납, 인두. 그리고 역시 빠지지 않을 노동력.

두 번째 버전에서 제작했던 닙 파트는 그대로 빼서 따로 보관하였다 혹시 나중에 다른 곳에 쓸까 싶어서.
대신 이번에는 짝퉁 사파리의 피더를 희생하기로 했다. (어차피 천오백 원짜리 펜이라... )
이번에도 과감히 잘라내었고 이번에는 반대로 닙이 들어갈 틈을 마련해야 해서 사포질로 좀 갈아내었다.


너무 갈아내면 닙이 헐거워 질까 봐 조심스럽게 갈아내려고 했지만 의외로 부품이 조그맣고 잘 갈리지 않는 듯해서 그냥 마구 갈았다.
다행히 딱 좋은 정도에서 멈추어서 다행이다 싶다.

1,2차 버전을 해봐서인지 금방 작업은 마무리되었으나 닙의 길이가 상당히 길어서 캡을 닫을 수 없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닙을 사용할 때만 장착하는 것으로 하고 평소에는 뒤 배럴 공간에 수납하기로 했다.
(2차 버전에서는 무게가 너무 가벼운듯해서 빈 컨버터에 물을 채워서 넣어두었었다.)

공간이 넉넉하여 닙이 이리저리 흔들리니 끝부분이 손상되지 않도록 배럴 끝부분에 휴지를 좀 뭉쳐서 넣어놓았다.


이로써 다 되었나 싶었는데 역시 조금 더 잉크를 머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역시 볼펜 스프링을 잘라 인두질을 해주었다.
2차 버전에서도 이런 식의 방법을 고려했었는데 인두질까지 하는 건 오버다 싶어서 관두었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는 김에 해보자 싶었다.



인두질을 할 때 닙 전체가 뜨거워지니 따라 하실 분은 바닥이 눌지 않도록 조심하고 화상에 주의하시라.

한 번 딥핑으로 이만큼 쓸 수 있게 되었다.


성공적으로 볼펜 스프링을 닙에 장착하고 나니 내 기준에 완벽한 딥펜이 되었다.
사파리의 그립감과 G 닙과 스푼 닙을 골라 쓰는 재미, 그리고 한번 딥핑으로 충분한 잉크량, 어디든 가져갈 수 있는 휴대성까지..
이렇게 완성된 3차 버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딥펜 개조기는 없을듯하다.

G 닙과 스푼 닙 구매 비용 2천 원에 망가진 부품과 쓰지 않던 부품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딥펜을 만들어낸 과거의 나를 칭찬해주는 걸로 글을 마치겠다.